• Exist as non-existence
  • 없음으로 존재하다.
    Exist as non-existence.


    설명서
    당신에게 ‘없음’ 상태의 존재는 무엇인가요? 저의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8가지 변화 과정처럼, 당신의 ‘없음’을 떠올려 보고 ‘없음’ 상태의 존재가 ‘있음’ 상태로 전환되는 경험을 가져보세요.

    'Downloads' of my laptop

    00. 다운로드 함
    나의 다운로드함에는 내가 다운로드 한 파일들로 차 있다. 하지만, 이 폴더를 확인 하기 전까진 나에게 ‘없는’ 존재이다. 파일을 하나하나 확인하면 무슨 파일인지, 어디에 사용한 파일인지 생각날 때도 있지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나에겐 ‘없는’ 존재로서 함께 있다. 내가 정의한 ‘없음’이란 ‘때론 기억과 회상이 바로 불가능하며 그럴만한 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없음’ 상태에 있는 존재들은 죽은 듯이 조용하고 인간의 관심 밖에 있다. 하지만 모두 우리를 스쳐 지나간 존재들이다. 앞서 언급한 다운로드함에 쌓여있는 파일처럼 우리가 생산, 재생산, 다운로드, 공유의 활동을 거친 한때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파일들을 쌓아두는 사람, 즉 오랫동안 ‘없음’ 상태에 두는 사람과 그때그때 정리를 잘하는 사람, 즉 꾸준히 ‘없음’ 상태에서 ‘있음’ 상태로 전환하는 사람 모두 이 ‘없음’을 판별하는 ‘기준’ 개념은 적용된다. ‘있음’과 ‘없음’을 알아차리는 주기와 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Parkour videos used in the film

    경험들은 시공간적 범위 내에서 분리된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일차적인 경험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하나의 경험이 다른 경험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 경험의 연결과 분리 가능성을 파쿠르의 공간을 뛰어넘어 다니는 액션에서 참조한다.

    01. 나
    나는 동물을 좋아해서 반려동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 한구석에 있다. 이 생각은 ‘난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았다’에서 비롯된다. ‘없음’ 기준에서 판단해 보면 난 반려동물을 키워보았다. 과거에 물고기, 병아리, 올챙이를 키운 경험을 상기시키지 못한 채 반려동물의 정의를 네발 달린, 걸어 다니는 존재로 제한하고 있었다. 물고기는 약 3번 정도 키웠다. 이마트의 동물 판매 코너에서 구매했다.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키웠고, 일주일에 한 번 어항 청소도 했다. 대충 키우지 않았지만, 오래전이기도 하고 그리 인상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올챙이는 식당에서 데려와 키웠다. 그 식당은 숲속에 있었는데, 물이 모아져 있는 곳에 올챙이가 있었다. 그 올챙이 몇 마리를 집에 데려와 넓은 꽃병에 넣어서 키웠다. 다리 네 개가 다 나왔었다. 집 앞 역에 있는 병아리 아저씨에게서 병아리를 구매했다. 두 마리를 넓은 상자 안에 넣어서 키웠다. 오래 키우지 못한 기억이 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먼저 죽고, 머지않아 나머지 한 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동네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놀이터의 나무가 우거진 곳 아래에 묻어줬다.

    02. 미니멀 라이프
    물건을 적게 소유하면 생활이 단순해지고, 점차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면서 오히려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미니멀 라이프는 내가 감당 가능하고 최소한의 물질적 ‘있음’을 추구함으로써 심리적 ‘있음’을 가볍게 유지해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삶의 한 방식이다. 이처럼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을 나에게 ‘있음’ 존재로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인 물건과 생각 정리가 필요하다. 맥시멀 라이프, 그리고 미니멀 라이프와 상관없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면 되나, ‘없음’과 ‘있음’의 전환 과정은 필수인 것이다. 나는 완전히 절대적인 맥시멀,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있지 않으나 어느 정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없음’을 ‘있음’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나에게 ‘없음’의 존재들을 ‘있음’의 존재로 바꾸기 위해선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충분해야 하는데 쌓여있는 할 일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을 가장 가깝게 둘러싼 존재를 인지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한꺼번에 떠안고 마는 상황이 벌어진다.

    03. 비상계단
    나의 다운로드 함에 쌓여있는 파일들을 정리하다 사진 두 장을 발견했다. 아파트 비상계단에 놓여 있는 물건들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사진 수업을 수강하면서 찍은 테스트 컷이다. 아파트에서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의 경계를 촬영하고자 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아파트 한 동의 비상계단을 돌아다니며 군데군데 놓여 있는 물건을 촬영했다. 물건의 주인에게 비상계단에 놓인 물건은 어떠한 존재일까. 이 물건들은 현재 ‘없음’ 상태에 있는 존재이다. ‘있음’ 상태에 있는 물건에서 보이는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을 띠고 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먼지가 쌓여있고, 사용되고 있는 물건과 달리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가 강하다. 이 물건들은 주인에게 ‘없는’ 존재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나에게는 ‘있는’ 존재이다. 모순적인 관계이다.

    04. 아파트 재건축
    아파트 재건축이 우리 주변에서 속속 이뤄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약 5년 전 재건축이 이뤄진 아파트 단지가 있고, 현재 재건축이 이뤄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도 있다. 나는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오래 걸려서 재건축 아파트가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따라서 나에게 이 아파트는 ‘있는’ 존재도, ‘없는’ 존재도 아니다. 재건축되기 전 원래 있던 아파트가 아직 ‘있는’ 존재로 남아있다. 있음의 존재, 없음의 존재라 판단하기에 앞서 판단할 수 있는 존재를 구체화해야 한다. 이 재건축 아파트가 나에게 ‘있음’과 ‘없음’의 존재로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내가 이 재건축 아파트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부정과 없는 존재가 유사한 개념으로 인지될 수 있으나 존재의 부정은 있음, 없음을 판단하기 전 자신의 성향, 감정, 생각에 따라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혹은 특정한 이유로 결정될 수 있다.

    05. 브리콜라주 디자인
    브리콜라주 디자인은 재료를 변용하거나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디자인 방식으로, 기존에 있거나 손에 닿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디자인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이는 ‘없는’ 존재를 ‘있는’ 존재로 바꾸는 방법이자 촉매가 될 수 있다. 나의 다운로드 함에 있는 ‘없음’ 상태인 파일들을 브리콜라주 방법을 통해 ‘있음’ 상태로 바꿔보자! 파일들을 하나하나 열고, ‘없음’을 ‘있음’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 파일들을 활용해 새로운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상태 변환은 인지와 정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있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순환처럼.

    06. 당신이 잠든 사이에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여자주인공인 루시가 남자 주인공인 피터를 고속 기차로부터 구해주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이다. 피터는 루시 덕에 가까스로 살았지만 결국 코마에 빠져버렸다. 이 상황에서 루시는 피터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피터의 약혼녀라는 오해를 받지만 얼떨결에 약혼녀임을 인정해 버린다. 피터는 기억을 사고에 의해 잃게 된 상황이고 루시의 상황도 거짓이기 때문에 현재 이들을 둘러싼 상황은 거짓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루시의 입장에선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가족과 가정의 따뜻함이 ‘없음’ 존재였으나 피터의 가족을 통해 ‘있음’ 존재가 되었다. 피터의 입장에서는 현재 ‘없음’과’ 있음’ 존재의 변환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피터의 동생, 잭의 입장에선 피터에 대한 ‘없음’ 상태에 있던 기억을 ‘있음’ 상태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루시가 피터의 약혼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다.

    07. 당선작 ‘없음’
    문학 작품을 시상할 때 시상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이때 당선작이 없다는 것을 글로 작성하는데 심사위원 자신이 왜 당선작을 뽑지 못했는지,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아쉬운 점이 무엇이었으며, 글을 쓰며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선될 뻔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지 못한 이유를 작성한다. 심사위원은 글을 당선시키기 위해 출품된 글을 수없이 분석할 것이다. 따라서 글 하나하나는 심사위원들에게 충분히 ‘있는’ 존재다. 그런데 당선작이 없다는 것은 내가 ‘없음’ 기준에 따라 ‘있음’과 ‘없음’을 판단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글을 선별하는 기준이 있고, 이 기준에 따라 당선작을 판별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선작 없음’의 상태를 ‘없음’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당선작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상황을 결정하게 된 이유를 알려주는 것은 출품작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기에 ‘있음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08. 산타는 없다.
    산타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의견이 분분한 것은 산타의 존재를 믿는 어린이들 사이에서의 일일 것이다. 나도 꽤 오랫동안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날 머리 위에 있는 선물들이 점점 내가 갖고 싶어 했다고 표현했던 것이고, 편지의 글씨체와 말투가 부모님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산타는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알게 되고 나서는 점차 비밀스럽게 선물을 받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실제로 산타는 실존하지 않는, 상상 속에서 만든 존재이다. 따라서 산타가 진짜 있다고 믿는 어른은 적을 것이나, 나의 없음 기준에 따라 생각해 보면 산타는 ‘있는’ 존재이다. 이탈리아 주교가 어린이들에게 ‘산타는 없다’라고 언급하고 나서 동심 파괴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사례가 있다. 산타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어른들도 함부로 ‘산타가 없다’고 말 하는 것을 좋지 않은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산타의 실존에 대해 사실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논란이 되는 현상을 보면 산타가 실존해야만 하는 존재인 것 같다.

    이면의 과정
    The Hidden Process

    Video Sources


    Title
    '없음으로 존재하다' 이전의 타이틀 명이 '이는 곧 당신에게서 없어질 것입니다.'이었습니다. 타이틀 명을 많이 고민했는데, '없음'과 '있음'의 끊임없는 전환과 이러한 둘의 관계성을 잘 담아낼 수 있는 타이틀로 '없음으로 존재하다'를 선정했습니다.


    Purpose
    사람들이 나의 '없음' 기준과 이에 따라 분석한 사례를 읽으며 자신의 '없음'에 대해,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없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더하고 추가하는 것에 힘쓰기 보다는 현재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발전했다. 따라서 나의 사례 분석을 통해 나 스스로 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내 없음 기준에 대한 확실한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고 싶다.-라는 목적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Research Method
    [나- 가족- 내가 사는 집- 친구- 지인- 동네- 지역- 우리나라- 다른 나라- 세계]의 공간적 확장, 그리고 시간적 확장 속에서 없음을 판별할 것이다. 시간적 확장의 경우 일직선상의 확장이 아닌 이미 확장되어 있는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에서 특정 공간과 사례에 맞는 시간을 선정하여 분석할 것이다. 가족, 친구, 지인은 공간이 아니지만 그들과 나의 관계, 그들과 나의 거리감을 공간으로 설정하여 일반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확장된 개념으로 공간을 넓혀 판별할 것이다.-의 리서치 방법론을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없음'을 떠올리고 분석해 내기에는 그 관계가 매우 유동적이고 '사람'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복잡함이 커서 덜 개인적이며 공감이 쉬운 문학, 디자인, 영화를 '없음' 기준에 따라 분석했습니다.

    My first record about 'Nothing'

    Instagram @u.o.u.m
    Mail wym030920@naver.com

    없음으로 존재하다
    Exist as non-existence

    2024